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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잡담 2017. 11. 21. 20:32

면접

그녀를 만난 것은 회사 앞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깔끔하게 입은 흰 블라우스와 검은색 정장치마, 그리고 잘 닦인 검정 구두는 그녀가 오늘 면접을 봤다고 말해 주었다. 정장 차림은 말쑥 했고, 뒤로 묶어내린 머리는 단정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왠지 그녀와 어울리지 않았다. 아직 후드티와 운동화가 더 어울리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 이제 막 면접이 끝난 모양인지,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아 보였다. 이제 좀 쌀쌀해진 날씨에 손은 빨갛게 얼어 있었다.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멋적게 인사를 했다. 그날 따라 그녀에게 엘리베이터는 좀 처럼 빨리 오지 않는 것같이 보였다.

나는 복도 건너 편 사무실로 가는 길이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나도 멋적게 목인사를 건냈다. 인사를 하다가 목도리를 놓쳤는지, 다시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목도리를 줍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곧 건너편 사무실로, 그녀는 이내 도착한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그녀와의 짧은 만남은 이것이 전부다.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 나는 나대로 그녀는 그녀대로 삶을 살다, 잠시 한 점에서 스쳐 지나간 것이다. 하지만 왜 인지, 그 장면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왜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걸까? 그녀가 이성적으로 매력적이었기 때문은 아닌것 같다. 그 만남엔 특별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차가운 공기, 추워 보이는 손, 긴장 되어 보이는 어깨, 어색한 표정만이 이상하게도 선명히 머리에 남아있다.

나도 구직자였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몇몇 회사에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었다. 내 삶은 면접관이 주목 할 만한 역경이 없었다. 그냥 남들이 공부하기에 공부를 했고, 남들이 대학에 가기에 나도 대학에 갔다. 집에 돈이 부족해서 돈걱정이 좀 있었지만, 대출받은 돈으로 등록금을 내고 운이 좋게 서울로 시집 간 누나네 집에 얹혀 살 수 있었다. 그냥 평범했다. 아마 당시 27살, 내 또래들의 삶 또한 그러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삶에 무슨 역경이라도 있길 바라는 건지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자소서에 나의 역경에 대해 물었다. 역경이 부족한 만큼 미사여구가 늘어났다.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너군데 회사에 서류전형 지원을 했다. 몇몇 회사에서는 서류전형 이후에 합격한 인원을 대상으로 인적성 시험을 봤는데, 나는 운이 좋게 한두 회사의 시험을 통과 할 수 있었다. “몇월 몇일 몇시까지 어디로 오세요” 인적성 합격과 함께 도착 한 면접 일정 메시지에 마음은 이미 합격한 것 처럼 기뻐던 기억이 난다. 늦은 나이에 얻은 막둥이 아들이 이제 다 자라서 구직도 하고 면접도 보는것이 기쁘셨는지, 누나들 시집갈 때 입었던 양복을 아버지께서 직접 다려 주셨던 기억이 난다. 면접장소는 양재의 어떤 대기업 연구소였다. 양재역에 내려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는데, 한여름의 뙤약볕에 발이 아픈 검정색 구두를 신고 열심히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작한 면접에는 나 말고 다른 사람 둘이 더 들어왔다. 면접장소에서는 기다리는 태도도 평가점수에 들어간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대기장소 부터 웃는 얼굴로 기다리느라 얼굴이 좀 얼얼 해 지려던 참이었다. 면접관들은 우리에게 몇가지 질문을 했다. “~했습니다”라고 말하려다 보니 안그래도 긴장되는 분위기에 말은 무지 꼬였다. 사실 긴장되는 것과 별개로 면접관이 나에게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알지 못했다. 옆 사람은 “~했습니다”로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답하지 못한 질문의 답을 곧 잘 설명했다. 곧 PT면접이 시작되었다. 내 발표에 면접관들은 흥미를 잃었는지 일부는 눈을 감고, 일부는 턱에 손을 괸채 나의 PT면접을 들었다. 딱히 발표에 대해 질문도 없었다.

곧 면접이 끝나고, 면접비를 줄 계좌 번호를 적으라고 해서 면접자 명부에 이름을 적는데, 다른 면접자 정보에 써진 출신 학교들을 보니 기가 죽었다. 그날 집으로 가기 위해 양재역으로 되돌아 나오는 그 길은 무척 길고도 더웠던 것 같다. 구두는 발이 아팠고, 양복이 잘 다려진 만큼 마음이 아팠다. 난 지금까지 뭘 한걸까.. 스무살 때부터 그때까지 나만 바라보고 살던 여자친구에게 미안했고, 또 부모님께 죄송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낙제라고 평가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더 이상 사회에서 날 받아줄 곳은 없는 것 처럼 느껴졌다. 드라마 였다면, 길건너다 다친 회장 할아버지를 도와 드려서 취직에 성공했을 텐데 아쉽게도 현실에서 그런건 없었다. 예상대로 실패.

어느 회사든 꼭 자소서만 쓰면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자신이 겪은 역경과 그 역경을 극복한 경험을 쓰시오”. 그런데 사실 사람이 겪어 볼 수 있는 역경 중에 가장 큰 역경은 구직이 아닐까? 이렇게 생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하게되고, 실패하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역경이 또 있을까 싶다. 그 역경을 맞이 해 울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역경을 쓰시오” 라고 묻는것이 꼭 “미안한데 취직같은 평범한 고통 말고 좀 더 큰 고통은 없었니?” 라고 물어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미안하다.

아마도 그래서 였던 것 같다. 그 어린 면접자의 얼어있던 손이 이토록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는. 잠시 스쳐지나가는 인연 이었지만, 그 모습에서 몇 년 전 양재역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내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면접을 잘 보았는지, 아니면 말이 꼬여 면접을 망쳤는지모르겠지만, 잘하고 있다고 어깨 툭툭치며 말해주고 싶었다. 아직 운동화와 후드티가 잘 어울리는 그녀에게, 그리고 양재역을 쓸쓸히 걸어가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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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이의 머리는 내 행복이 살기에 비좁은 곳이다."

 

얼마전에 읽었던 책에 있던 말인데, 쇼펜하이머라는 철학자가 했단다. 한 줄의 글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던 말이었다. 내 스스로, 지금까지 다른이의 머릿속에 있는 내 행복을 찾아 살아왔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지금껏 다른사람의 인정에서 내 정체성을 찾기를 바라왔고, 다른이의 부정적인 말 한 마디에 굉장히 힘들어 하며 며칠밤을 괴로워 하기도 했고, 내 생각 없이 그저 남이 흐르는 대로 나도 같이 흘러 살아왔다. 좋게 보면 순종적으로 나쁘게 말하자면, 줏대 없이 살아온 거라고도 볼 수 있겠다.

 

 어릴때는 왜 하는지도 모르고 어른들이 공부를 하라기에 공부를 했고, 다들 대학을 가기에 수능점수에 맞춰 취업이 잘된다던 학과에 지원을 했다. 다행히도 익숙한 이름을 가진 학교에서 오라고 하기에 서울로 갔고, 촌동네 학교에서 제법 들어본 학교로 진학 했기에 얼마정도는 우쭐하며 서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간 대학교에서 뭔가를 배운다고 한들 내 스스로의 공부는 없었고 그냥 시간 때우기용으로 앉아있는게 전부였던 것 같다. 그렇게 우물쭈물하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착실히도 흘러갔고, 눈깜짝할 사이에 졸업이 다가 왔다. 이대로 취업은 못하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반정도는 취업전쟁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뭐 이후 부터는 말안해도 될 정도로 무난히 남들 사는대로 졸업하고 취업하고 살아오고 있다.

 

 중요한거는 내가 살아온 전체 시간을 되돌아 봤을때, 내 의지가 결여 되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 생각에 맞춰 살아온적이 없는것 같다. 오히려 살아가는 것에 내 생각을 맞춰 살아 왔달까? 어릴때, 가정통신문 좋아하는 과목에  "수학, 과학"이라고 썻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2학년쯤 되는 아이가 좋아하는 과목에 수학 과학이라니..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말도 안되는 말이다. 난 수학 과학을 그정도로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오래 살다보니 문학과 그림그리기가 내 적성에 더 맞지 않았을까 생각 한다. 좋게 생각하자면 주어진 상황에 자족할 줄 아는 거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주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이라 생각 할 수도 있겠다. 

 

 말썽부리지 않고 착실히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살아 왔다고 내 삶을 정의하는 것은 너무 심한 일반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 내가 좀더 주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생각을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던 버나드쇼의 묘비명이 떠오른다. 열심히 일해야 할 나이에 지금와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늦바람마냥 불온한 생각인 것인지, 혹은 이젠 너무 늦어버려 소용없는 것은 아닐지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버나드 쇼에 비하자면 조금은 더 빠른 생각이 아닐지 생각하며, 바쁜 생활에서도 애써 정신차리고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 또 어떻게 사는 것이 내 모습에 맞는지 치열하게 생각하며 내 삶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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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2014. 6. 21. 21:47

 대학교 학부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문득 "지금 상태로 취업하면 돈은 고졸보다 더 많이 받을 텐데, 내가 고졸 취직자보다 더 할 수 있는게 있나?"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본적이 있다. 사실 지금도 이 물음에 자신감 있게 Yes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 때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법 진지하게 생각했고 그 결과 석사과정 진학을 선택했었다. 사실 조금은 치열한 취업전쟁에서 일단 한 발자국 떨어져 숨을 고르고싶은 현실 도피적 의도도 있기는 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그다지 나쁘진 않았던 선택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선택한 석사과정은 컴퓨터 비전을 연구하던 연구실에서 시작했다. 학부생 때 실험과목으로 잠깐 들었던 이미지 처리때문인데, 수학만 잔뜩 나오고 그 결과도 바로 바로 확인할 수 없는 다른 과목에 비해 단순히 이미지 처리 라이브러리를 써서 그 결과를 바로바로 볼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틀린 생각이란걸 깨닫기 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사실 지금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지만, 처음 석사과정 때는 모든 것이 배는 더 어려웠었다. 학과 특성상 프로그래밍과 수학을 굉장히 많이 공부했어야 햇는데, 수학도 문제였지만 프로그래밍은 도무지 뭔소린지 하나도 이해 할 수 없었다. 출신성분이 전자전기 공학부다보니 아무래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등한시 했었고 교양수준의 간단한 프로그램만 짤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때, 물어볼 사람도 없고해서 인터넷을 참 많이도 검색했었는데 블로그에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잘 정리하고 공유해주신 분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보답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고, 사실 그럴만한 실력도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작디 작은 내용이라도 좀 정리해두면 누군가는 내가 대학원 때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그 작은 도움을 내 블로그를 통해서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블로그를 시작해 본다. 성실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더 많은 것을 공유 할 수 있도록 비록 작고 부족한 삶을 사는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지혜와 끈기 그리고 용기를 주시면 좋겠다. 

2014.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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